자료실

성경자료 |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제5장 구약의 설화들 - 그 적절한 사용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서규태 작성일2006-12-21

본문

제5장 구약의 설화들 - 그 적절한 사용.

성경에는 설화(이야기, 역사 서술)들이 많다. 구약의 40%가 설화로 구성되어 있다. 구약이 성경 전체 부피의 3/4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성경 전체에서 가장 흔한 문학 형태가 바로 설화라고 해서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는 성령께서는 성경의 그렇게 많은 부분을 설화의 형태로 영감하셨을 때에 분명히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으리라는 사실을 전제로 삼는다. 설화체가 하나님의 계시의 목적에 잘 어울린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여겨진다.

설화의 본질.
설화란 무엇인가?
설화는 곧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설화라는 낱말이 더 좋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지어낸 어떤 것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또 이야기는 등장인물도 구성도 단순한 단 하나의 이야기를 뜻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야기라 불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철저하게 사실이며,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가끔 복잡한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이야기 형태의 이 위대한 신적 이야기의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의미에서 설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경의 설화는 일어난 사실을 다루지만, 일어난 모든 사실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설화들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그의 창조 세계에서, 또 그의 백성들 가운데서 일하고 계심을 보여주고자 하는 데 있다. 설화들은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우리로 하여금 그를 깨닫고 인식하도록 도와주며, 또한 그의 섭리와 보호하심의 면면을 보게 해 준다.

설화의 세 가지 차원.
구약의 설화는 세 가지 차원에서 씌어지고 있다.
고급 설화 - 창조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전우주적인 계획을 다룬다. 주요 구성들은 창조 자체, 인간의 타락, 죄의 능력과 편재, 구속의 필요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희생이다.
중급 설화 - 주로 이스라엘에 관심을 둔다.
하급 설화 - 수백 가지의 개별적인 설화. 이것들이 모여서 다른 두 종류의 설화(고급과 중급)를 구성한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했다는 설화 등이 이에 속한다.

예수님은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7-39)라고 가르치셨다. 이 때 그는 구약 성경의 개개의 모든 구절을 다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메시야적이거나 아니면 달리 신약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으로 인정된 그러한 개개의 구절들 - 설화까지 포함해서 - 은 구약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은 전체 계시의 아주 적은 분량만을 차지한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바로 궁극적인 고급의 설화를 염두에 두고 그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 설화는 곧 예수의 속죄가 중심 활동이 되며, 절정을 이룬다. 이렇게 해서 주께서는 성경이 전체적으로 자신을 증거하며, 그의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되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개별 설화를 모두 그 자체로서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가장 완전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지막으로 그 개별 설화 하나하나를 보다 큰 문맥 속에서 보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

설화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
1. 구약의 설화를 단순히 구약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만 생각함. 그러나 구약의 설화는 하나님이 그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어떻게 행하셨는가를 보여주는 첫 이야기들이며,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이다.
성경은 신적인 설화들로 구성되어있다. 하나님이야말로 모든 설화에서 '최고의 주인공'이시오, 결정적인 인물이 되신다.
2. 구약의 설화들을 숨은 의미가 가득한 풍유나 이야기로 생각함. 잘못된 생각이다. 설화는 어떤 주어진 문제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모두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다.
설화는 그 초점이 제한되어 있고, 따라서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행하시는 일의 전체적인 면모 중 단지 한 부분만을 보여 줄 따름이다. 그러므로 호기심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 찾을 수 있고, 의미를 부과하여 읽게 되고, 결국은 역사적인 기술에 불과한 내용을 풍유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3. 구약의 설화는 반드시 직접적으로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관념.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설화는 율법적인 부분이나 교리적인 부분들이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본성과 계시를 강조해 준다.
설화는 우리로 하여금 사건과 경험들을 통하여 대신 살아보도록 해 준다. 구약의 설화의 진행을 따라가노라면, 그 설화 속의 인물이 아무리 독자들과 거리가 멀고, 또한 그들의 처한 환경이 아무리 다르다 할지라도, 이야기를 읽을 때에 늘 그렇게 되듯이 그 속에 대신 자동적으로 빠져들게 된다.
책의 독자가 그리스도인인 이상, 구약성경은 여러분의 영적 역사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부르심은 곧 여러분을 향한 역사적 약속과 부르심이다.

구약의 설화는 직접적으로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다른 곳에서 직접적으로 또한 단언적으로 교훈한 내용을 실제적인 예로써 설명하기도 한다. 이는 일종의 암시적인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했다는 설화에는 '다윗이 간음의 잘못을 하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설화는 간음이 다윗 왕 개인의 삶과 그의 통치력에 얼마나 해악을 끼쳤는지를 실례를 보여 줄 따름이다.
다윗의 간음은 하나의 특정한 경우에 발생한 간음의 효과를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이다. 이런 사례를 통해 독자들의 마음에 단단히 새겨질 수 있는 아주 강한 메시지를 준다.

4. 각각의 개별 설화나 에피소드가 전부 그 나름대로의 교훈을 담고 있다는 관념. 그러나 마치 모든 사건과 묘사가 독자들에게 각각 특별한 메시지를 주는 것으로 설화를 분산시켜서 해석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긴 설화에서조차도 그 설화의 모든 부분 부분들이 함께 협력하여 독자들에게 한 가지 주요 사항에 대해 인상을 심어 줄 수가 있다.
설화 속에 나타난 자료 하나하나에서, 또는 매 사건에서 어떤 의의를 찾으려는 시도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설화를 하나하나 해부하지 말고, 하나의 전체적인 통일체로서 평가해야 한다.

설화의 해석을 위한 원리들.
설화들을 석의하고자 할 때마다 명백한 해석상의 오류를 피하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10가지 원리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① 구약의 설화는 직접적으로 어떤 교의(교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② 구약의 설화는 다른 곳에서 명시적으로 교훈한 어떤 교의나 교의들을 실례들로써 제시하는 것이 보통이다.
③ 설화는 일어난 일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일어났어야 할 일을, 또는 어느 때든 일어나야만 하는 일을 반드시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모든 설화가 거기에서 진술하는 사건들과 동일한 것을 교훈으로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④ 설화 속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행동이 반드시 우리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경우도 많다.
⑤ 구약의 설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결코 완전하지 못하며, 그들의 행동 또한 그러하다.
⑥ 설화의 끝머리에 가서 그 설화에서 되어진 일이 선하든지 악하든지 하는 언급이 반드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들 스스로 하나님이 이미 성경에서 직설적으로 단언적으로 가르쳐 주신 것을 근거로 그것을 판단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⑦ 설화는 모두가 다 선별적이며, 불완전한 것이다. 필요한 구체적인 내용이 반드시 모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설화에 나타나는 것은 모두 영감된 저자가 우리에게 알려진 만큼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 것들이다.
⑧ 설화는 우리의 모든 신학적인 문제들에 대해 답변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 아니다. 설화는 제각기 특정한 구체적인 제한된 목적을 갖고서 특정한 문제들을 다룬다. 그 밖의 문제들을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지도록 내버려 둔다.
⑨ 설화는 명시적으로(무엇을 분명히 진술함으로써) 가르칠 수도 있고, 또는 암시적으로(실제로 진술하지는 않으면서도 분명히 무엇을 암시해 주는 식, 이야기 속에 분명히 내재하고 있으면서도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는 않은 그런 가르침) 가르칠 수도 있다.
⑩ 마지막으로, 성경의 모든 설화의 주인공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설화 해석의 예.

요셉 설화.
요셉의 설화에서 주인공이 누구이며, 이 이야기의 교훈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창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하나님이 바로 주인공이시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셨다는 것이 교훈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요셉의 됨됨이나 그가 행한 어떤 것을 찾아내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요셉처럼 복을 받기 위해서는 그런 것을 그대로 모방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갖는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그 설화는 그런 것을 교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설화의 내용은 하나님이 도저히 격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사람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행하셨는가 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요셉 설화 전체를 구성하는 작은 설화들의 여러 가지 상세한 내용들은 사실상 요셉이 날 때부터 지닌 어떤 것을 나타내는 것도, 그의 행동에서 모범이 될 만한 어떤 것을 지적하는 것도 아니다.

성경 자체가 제시하는 한 가지 교훈,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이외의 다른 어떤 교훈을 찾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 심지어 형제들이 요셉에게 품었던 악의조차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되었다.
요셉의 삶의 양식이나, 그의 인격이나 그의 행동 등은 일반적인 도덕적 원리들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어떤 것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다.

요셉 자신도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께서 요셉 설화의 모든 사람들을 보다 큰 목적을 위하여 일으키셨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능력을 얻게 된다.

초점은 하나님께 있다. 그는 자신이 뜻하시는 바를 성취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그의 가족과 바로 등 전혀 격에 어울리지 않는 매개체를 이용하사 많은 백성들을 보존하시고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나의 특별한 백성을 창조하기 시작하신다.

룻의 설화.
룻의 설화에서는 암시적인 내용들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1) 룻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믿음으로 회심하였음을 보여준다.
룻이 회심하였다고 말하지 않지만, '(룻1:16)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는 룻의 고백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2) 룻 설화는 보아스는 많은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달리 모세의 율법을 지켰던 의로운 이스라엘 사람이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2:3-13, 3:10-12, 4:9-10.
보아스는 레위기 19:9-10에서 명한 대로 이삭을 남겨두라는 율법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그리고 레위기 25:23-24에서 명한 대로 기업을 무르는 일에 대한 율법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는 사실.
3) 이 설화는 이 이야기가 다윗 왕의 혈통의 배경의 한 부분을 이룬다는 사실을 암시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롯은 다윗의 증조 할머니이고 예수님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닌가! 이 점은 룻 설화 전체의 교훈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4) 룻 설화는 베들레헴이 그 거민들의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사사시대에 아주 예외적인 성읍이었음을 암시적으로 말해준다. 그 증거는 2:22을 빼고 모든 구절에 다 나타난다.
2;22은 이삭을 남겨두라는 율법을 모든 베들레헴 사람들이 다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 아님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오미는 큰 환란을 당할 때나, 기쁜 일이 있을 때나, 그녀는 여호와의 뜻을 깨달으며 그 뜻에 순종한다. 또 보아스는 여호와를 섬기며 그를 따르는 자다운 그의 말과, 그 말을 확증시켜 주는 행동들을 보여 줌으로써 자신의 참다운 면모를 시종일관 드러내고 있다.

5) 저자가 영감을 받아 중요한 사건들을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으로 돌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1:6, 4:13).
설화는 실제로 그 어느 곳에서도 '베들레헴은 그 때에 그 경건함이 뛰어난 성읍이었다'고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설화가 말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것(베들레헴은 그 때에 그 경건함이 뛰어난 성읍이었다)는 것이다.

경고.
암시적인 것이 비밀스러운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암시적이란 비록 여러 말로 진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거기 진술된 내용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설화가 실제로 말해주는 직, 간접적인 내용 전부를 우리 것으로 하는 것이다.

몇 가지 주의 사항.
사람들이 성경 설화 속에서 거기에 있지도 않은 것들을 찾아내는 일이 - 하나님께서 알려 주고자 하시는 것을 성경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들의 관념을 가지고 성경을 파헤쳐 들어가는 일이 - 그렇게도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주된 이유는 3가지이다.
1) 그들은 어떤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2) 참을성이 없다는 것이다.
3) 성경의 모든 내용이 그들 자신의 개별적인 삶에 대한 교훈으로 곧바로 적용된다는 그릇된 기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하는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답변들이 언제나 그 책에 다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경 전체에서 찾지를 않기 때문에 실수를 범하게 된다.

여기에 보통 범하기 쉬운 6가지의 해석상의 오류를 열거하고자 한다.
① 풍유화 : 명확한 의미에 관심을 두지 않고 본문을 단순히 그 본문을 넘어서는 또 다른 의미를 반영하는 것으로만 취급해 버리는 것. 성경의 풍유들이 단순히 설화 형태로만 되어 있는 경우는 없다.
② 탈문맥화 : 전체적인 역사적 문학적 문맥을 때로는 개별 설화까지도 무시하고, 작은 부분들에만 주의를 집중시켜서 결국 해석의 실마리들을 놓치는 것.
③ 선별성 : 탈문맥화와 유사한 것으로서, 특정한 단어나 어구를 취사선택하여 그것들에 대해서만 주의를 집중시키고 다른 것들을 무시하며, 또 전체적인 흐름도 무시하는 것이다.
④ 잘못된 연결 : 구절 자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연결된 것에서 어떤 내용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⑤ 재정의 : 본문의 확실한 의미를 다시 새롭게 정의하여 무언가 다른 의미를 가진 것처럼 만들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한다.
⑥ 정경 이외의 권위에 의존함 : 성경에 대해서 어떤 특별한 외적인 자료를 사용함으로써 성경의 비밀을 풀 수 있다고 여기는 경우. 성경을 특별한 지식이 있어야 풀 수 있는 일종의 수수께끼의 집합과 유사한 것으로 취급.

설화를 읽고 교훈을 얻는 문제에 대해서 가장 유용한 한 가지 충고가 있다면, '본대로 무엇이나 그대로 따라 하는 원숭이와 같은 성경 독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의 설화는 직접 우리들에 대해서 다루는 설화가 아니다. 설화로부터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지만, 하나님이 성경의 인물들이 행한 일들을 여러분이 그대로 행하기를 기대하신다거나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 똑같이 여러분에게 일어날 것을 생각하신다거나 하는 식의 생각은 결코 가져서는 안된다.

독자가 할 일은 성경에서 행해진 모든 일을 그대로 행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 관한 설화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이다.
설화가 우리에게 귀중한 것은 그것들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관여하심을 그렇게 생생하게 증거해 주며, 또한 하나님의 원리들과 명령을 그렇게도 뚜렷이 실례로써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화는 개인의 윤리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제시한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직접적인 가르침을 주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