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자료 |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제1장 서론 - 해석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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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규태 작성일2006-12-21본문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제1장. 서론. 해석의 필요성.
성경은 평범한 사람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데, 오히려 설교자들이나 교사들 때문에 성경을 이해하는 것을 어렵고, 모호하게 만들 때도 있다. 물론 성경은 모호한 책이 아니다. 성경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성경에 나타나는 수많은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이다. 그것은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또 좋은 해석의 목표는 독특함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만함이나 신령함에 대한 잘못된 이해나, 편향적인 관심사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특한 해석들은 잘못된 것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른 해석이 지향하는 목표는 '본문의 명확한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이와 함께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식이다.
그러나 명확한 의미를 얻는 것이 해석의 전부라면, 어째서 해석을 하려고 하는가?
단지 읽기만 하면 안되는가? 이 질문은 독자의 본질과 성경의 본질이라는 두 가지 문제 때문에 현실성이 없는 것이다.
독자도 해석자이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배워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싫든 좋든 모든 독자는 동시에 해석자가 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그 읽은 것을 당연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가 이해한 것이 성경의 저자의 의도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선입관 등 때문에 - 물론 고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 우리는 엉뚱하게 이해할 수도 있다.
예) 십자가 - 가 아니라 'T'자 형이었을 것이다.
예)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 - 육신이라는 말은 '육체적인 욕망'을 의미하지 않고, 죄악된 본성을 지칭한다.
또 성경을 읽는 독자는 이미 해석에 동참한다는 사실이다. 번역 그 자체가 해석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번역자들은 언어상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점을 충분히 고려한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모든 '명확한 의미'가 모두에게 똑같이 명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전14:34-35을 근거로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동일한 문맥에서 나오는 방언과 예언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고전11:2-16에 근거하여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기도하고 예언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여자들이 기도하고 예언할 때에는 반드시 머리에 무엇을 써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 간에 인정할 수 있는 이런 견해들 외에도 온갖 이상한 이론들이 성행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요한삼서 1장 2절의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의 명확한 뜻이 '금전적이며, 물질적인 번영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실제적인 의미와 전혀 반대되는 내용을 명확한 의미라고 하고, 더구나 그 해석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도대체 명확한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석이 필요없이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역시 무리이다.
그러므로 상식적인 지침에 근거한 건전한 해석을 해야만 한다.
이 책은 각 장르에 본래적으로 있는 특정한 문제들에 대해 독자들이 감각을 높여 주며, 또한 어째서 다른 견해들이 나타나는지, 상식적인 판단은 어떻게 하는지를 알게 하며, 특별히 건전한 해석과 불건전한 해석을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며, 어떤 해석을 건전하게 혹은 불건전하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려는 것일 뿐이다.
성경의 본질.
해석이 필요한 의미심장한 이유는 바로 성경 자체의 본질에 있다. 성경은 인간적인 동시에 신적인 것이다. 성경의 이러한 이중적인 성격 때문에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영원한 타당성을 지닌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또한 순종해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은 역사 속의 인간의 말을 통해서 자신의 말씀을 하기로 하셨기에, 성경의 각 책들은 또한 역사적 특수성을 갖는다. 즉 각 책들은 그것이 본래 기록된 언어와 시간과 문화에 의해서 결정되어진다. 이처럼 성경의 영원한 타당성과 그 역사적 특수성이 서로 '긴장' 상태에 있기 때문에 성경을 해석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하나님이 인간의 실제적인 역사의 맥락 속에서 말씀하시기로 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바로 그 동일한 말씀이 교회의 전역사를 통해서 해 온 것처럼 우리들 자신의 '실제적인'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말씀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성경에 인간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동시에, 우리에게 도전을 주며, 또한 해석을 해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 점과 관련하여 2가지 사항을 주지해야 한다.
1) 근 1500년에 걸쳐서 여러 다양한 상황에 처했던 실존 인물들을 통해서 말씀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사람들의 어휘나 사고방식을 통해서 표현되며, 또 그 시대의 문화와 당시의 상황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려면,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통해서나 사건을 통해서 주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시대적으로, 사상적으로도 그들과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사실이 성경을 해석하기를 배워야 하는 주된 이유다.
이렇게 해서 독자들은 두 가지 점에서 해석의 과제에 연루된다.
첫째. 과거에 그들이 들었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둘째. 그 동일한 말씀을 지금 여기에서 듣기를 배워야 한다.
2)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모든 인간적인 상황들에 맞게 전달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전달 방법을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적절히 해석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모든 말씀에 적용되는 일반 법칙을 알아야 하고, 각각의 문학양식(쟝르)에 적용되는 특별 법칙도 배워 두어야 한다.
첫 번째 과제 : 석의.
해석자의 첫 번째 과제는 석의라고 불리운다. 석의란 본래의 의도된 의미를 찾는 신중하고도 조직적인 성경 연구 방법이다. 이 과제는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과제이다.
하나님 말씀을 그 말씀의 본래 처음 들었던 자들이 들은 바대로 듣고, 그리하여 성경 말씀의 본래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를 밝히는 일이다.
1. 모든 사람들이 때때로 석의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고, 또한 그런 석의가 아주 건전한 것일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경 본문과 현대의 문화적 상황 사이에 확실한 괴리가 있을 경우에만, 석의적 방법을 사용하는 경향이 짙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석의는 모든 본문을 읽을 때에 첫 번째로 거처야 할 단계이다. 석의적으로 사고하게 하게되면, 본문에 대한 이해력이 풍부해지고, 따라서 굳이 성경연구까지는 언급하지 않아도 성경 읽기에 있어서만이라도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첫단계에 불과하다.
살전 5:22(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은 예언에 관해서 하는 말이다. 즉 예언을 시험해 보아서 그것이 성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면, 그 예언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그 본문을 통해 의도하시는 바와 전혀 다른 의미를 그 본문에 부여하는 행위는 그 본문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문을 악용하고 있다.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석의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즉 모든 분문에 있어서 과거 그 당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서 생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2) 처음부터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필요한 경우 더 나은 자료를 참조하고 사용해야 한다.
석의의 방법.
어떻게 하면 오류를 범하지 않고, 건전한 석의를 할 수 있는가? 전문적인 기술이나 지식이 없더라도, 우리는 건전한 석의를 할 수 있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첫째,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야 하고, 둘째, 다른 사람들의 자료를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건전한 석의의 비결은, 본문을 주의 깊게 읽는 것과 본문에 대한 바른 질문을 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모든 성경 구절에서 반드시 해야 할 질문에는 기본적으로 2가지가 있다.
즉 문맥에 대한 질문과 내용에 대한 질문이다. 다시 문맥에 대한 질문에는 역사적인 질문과 문학적인 질문 두 가지가 있다.
역사적 문맥.
역사적 문맥은 책마다 달라지는 것으로 여러가지 요인과 관련을 맺는다. 저자와 당대 독자들의 시대와 문화와 배경 등이다. 이런 모든 문제가 그 본문을 이해하는 데 특별히 중요하다.
역사적 문맥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는 성경의 각 책과, 그 책들의 각 부분들의 배경과 목적을 파악하는 일이다. 이스라엘 혹은 교회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그러한 책이 나오게 되었는가? 또 저자가 어떤 상황에 있었기에 그런 책을 기록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 등은 중요한 탐구 영역이다.
문학적 문맥.
문학적 문맥이란 본질적으로 단어는 문장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성경의 문장의 경우, 대부분이 앞 뒤 문장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모든 문장과 단락에 대해 우리가 늘 묻고, 또한 반복해서 계속 물어야 할 문맥상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주제가 무엇이냐?'이다.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왜 여기서 그 말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서 그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은 언제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석의의 목표는 원저자가 의도하는 바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과제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운문과 단락을 잘 알아볼 수 있는 번역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용의 문제.
내용은 단어들의 의미와 문장의 문법적인 관계, 그리고 사본에 따라 진술하는 바가 다를 경우, 원본을 택하는 문제 등과 관련을 맺는다. 고후5:16에서 바울은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라는 말씀을 하였는데, 여기서 '육체대로'란 누구를 꾸미는 말인가? 그리스도인가? 그리스도를 아는 '우리'인가?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더 이상 그리스도를 '세상적인 안목으로' 알지 않는다는 말이다.
석의를 위한 참고서들.
두 번째 과제 : 해석학.
해석학이란 보통 석의를 포함해서 해석의 전 분야를 통틀어 지칭하는 것이지만, 고대의 본문에 대한 현대적 타당성을 찾는 것을 뜻하는 좁은 의미로도 사용된다.
우리가 성경을 접하게 되는 것은 결국 우리들이 처한 '지금 여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기를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이 우리의 경건한 묵상을 올바로 이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절한 '해석학'은 반드시 든든한 '석의'와 함께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 연구에서 '지금 여기'의 문제부터 출발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해석학이 성경 본문 자체의 본래의 의미에 의해서 철저하게 통제를 받는다는 데에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어디까지나 본문의 '명확한 의미'이다. 주관적인 해석이 아니라, 객관적인 해석의 원리에 따라 본문의 의미가 결정되어야 한다.
또 우리를 향한 성경 본문의 참된 의미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처음 말씀하셨을 때에 본래 의도하셨던 바의 의미와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 출발점이다.
제1장. 서론. 해석의 필요성.
성경은 평범한 사람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데, 오히려 설교자들이나 교사들 때문에 성경을 이해하는 것을 어렵고, 모호하게 만들 때도 있다. 물론 성경은 모호한 책이 아니다. 성경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성경에 나타나는 수많은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이다. 그것은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또 좋은 해석의 목표는 독특함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만함이나 신령함에 대한 잘못된 이해나, 편향적인 관심사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특한 해석들은 잘못된 것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른 해석이 지향하는 목표는 '본문의 명확한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이와 함께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식이다.
그러나 명확한 의미를 얻는 것이 해석의 전부라면, 어째서 해석을 하려고 하는가?
단지 읽기만 하면 안되는가? 이 질문은 독자의 본질과 성경의 본질이라는 두 가지 문제 때문에 현실성이 없는 것이다.
독자도 해석자이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배워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싫든 좋든 모든 독자는 동시에 해석자가 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그 읽은 것을 당연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가 이해한 것이 성경의 저자의 의도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선입관 등 때문에 - 물론 고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 우리는 엉뚱하게 이해할 수도 있다.
예) 십자가 - 가 아니라 'T'자 형이었을 것이다.
예)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 - 육신이라는 말은 '육체적인 욕망'을 의미하지 않고, 죄악된 본성을 지칭한다.
또 성경을 읽는 독자는 이미 해석에 동참한다는 사실이다. 번역 그 자체가 해석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번역자들은 언어상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점을 충분히 고려한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모든 '명확한 의미'가 모두에게 똑같이 명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전14:34-35을 근거로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동일한 문맥에서 나오는 방언과 예언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고전11:2-16에 근거하여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기도하고 예언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여자들이 기도하고 예언할 때에는 반드시 머리에 무엇을 써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 간에 인정할 수 있는 이런 견해들 외에도 온갖 이상한 이론들이 성행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요한삼서 1장 2절의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의 명확한 뜻이 '금전적이며, 물질적인 번영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실제적인 의미와 전혀 반대되는 내용을 명확한 의미라고 하고, 더구나 그 해석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도대체 명확한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석이 필요없이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역시 무리이다.
그러므로 상식적인 지침에 근거한 건전한 해석을 해야만 한다.
이 책은 각 장르에 본래적으로 있는 특정한 문제들에 대해 독자들이 감각을 높여 주며, 또한 어째서 다른 견해들이 나타나는지, 상식적인 판단은 어떻게 하는지를 알게 하며, 특별히 건전한 해석과 불건전한 해석을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며, 어떤 해석을 건전하게 혹은 불건전하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려는 것일 뿐이다.
성경의 본질.
해석이 필요한 의미심장한 이유는 바로 성경 자체의 본질에 있다. 성경은 인간적인 동시에 신적인 것이다. 성경의 이러한 이중적인 성격 때문에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영원한 타당성을 지닌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또한 순종해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은 역사 속의 인간의 말을 통해서 자신의 말씀을 하기로 하셨기에, 성경의 각 책들은 또한 역사적 특수성을 갖는다. 즉 각 책들은 그것이 본래 기록된 언어와 시간과 문화에 의해서 결정되어진다. 이처럼 성경의 영원한 타당성과 그 역사적 특수성이 서로 '긴장' 상태에 있기 때문에 성경을 해석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하나님이 인간의 실제적인 역사의 맥락 속에서 말씀하시기로 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바로 그 동일한 말씀이 교회의 전역사를 통해서 해 온 것처럼 우리들 자신의 '실제적인'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말씀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성경에 인간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동시에, 우리에게 도전을 주며, 또한 해석을 해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 점과 관련하여 2가지 사항을 주지해야 한다.
1) 근 1500년에 걸쳐서 여러 다양한 상황에 처했던 실존 인물들을 통해서 말씀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사람들의 어휘나 사고방식을 통해서 표현되며, 또 그 시대의 문화와 당시의 상황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려면,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통해서나 사건을 통해서 주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시대적으로, 사상적으로도 그들과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사실이 성경을 해석하기를 배워야 하는 주된 이유다.
이렇게 해서 독자들은 두 가지 점에서 해석의 과제에 연루된다.
첫째. 과거에 그들이 들었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둘째. 그 동일한 말씀을 지금 여기에서 듣기를 배워야 한다.
2)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모든 인간적인 상황들에 맞게 전달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전달 방법을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적절히 해석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모든 말씀에 적용되는 일반 법칙을 알아야 하고, 각각의 문학양식(쟝르)에 적용되는 특별 법칙도 배워 두어야 한다.
첫 번째 과제 : 석의.
해석자의 첫 번째 과제는 석의라고 불리운다. 석의란 본래의 의도된 의미를 찾는 신중하고도 조직적인 성경 연구 방법이다. 이 과제는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과제이다.
하나님 말씀을 그 말씀의 본래 처음 들었던 자들이 들은 바대로 듣고, 그리하여 성경 말씀의 본래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를 밝히는 일이다.
1. 모든 사람들이 때때로 석의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고, 또한 그런 석의가 아주 건전한 것일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경 본문과 현대의 문화적 상황 사이에 확실한 괴리가 있을 경우에만, 석의적 방법을 사용하는 경향이 짙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석의는 모든 본문을 읽을 때에 첫 번째로 거처야 할 단계이다. 석의적으로 사고하게 하게되면, 본문에 대한 이해력이 풍부해지고, 따라서 굳이 성경연구까지는 언급하지 않아도 성경 읽기에 있어서만이라도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첫단계에 불과하다.
살전 5:22(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은 예언에 관해서 하는 말이다. 즉 예언을 시험해 보아서 그것이 성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면, 그 예언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그 본문을 통해 의도하시는 바와 전혀 다른 의미를 그 본문에 부여하는 행위는 그 본문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문을 악용하고 있다.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석의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즉 모든 분문에 있어서 과거 그 당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서 생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2) 처음부터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필요한 경우 더 나은 자료를 참조하고 사용해야 한다.
석의의 방법.
어떻게 하면 오류를 범하지 않고, 건전한 석의를 할 수 있는가? 전문적인 기술이나 지식이 없더라도, 우리는 건전한 석의를 할 수 있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첫째,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야 하고, 둘째, 다른 사람들의 자료를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건전한 석의의 비결은, 본문을 주의 깊게 읽는 것과 본문에 대한 바른 질문을 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모든 성경 구절에서 반드시 해야 할 질문에는 기본적으로 2가지가 있다.
즉 문맥에 대한 질문과 내용에 대한 질문이다. 다시 문맥에 대한 질문에는 역사적인 질문과 문학적인 질문 두 가지가 있다.
역사적 문맥.
역사적 문맥은 책마다 달라지는 것으로 여러가지 요인과 관련을 맺는다. 저자와 당대 독자들의 시대와 문화와 배경 등이다. 이런 모든 문제가 그 본문을 이해하는 데 특별히 중요하다.
역사적 문맥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는 성경의 각 책과, 그 책들의 각 부분들의 배경과 목적을 파악하는 일이다. 이스라엘 혹은 교회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그러한 책이 나오게 되었는가? 또 저자가 어떤 상황에 있었기에 그런 책을 기록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 등은 중요한 탐구 영역이다.
문학적 문맥.
문학적 문맥이란 본질적으로 단어는 문장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성경의 문장의 경우, 대부분이 앞 뒤 문장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모든 문장과 단락에 대해 우리가 늘 묻고, 또한 반복해서 계속 물어야 할 문맥상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주제가 무엇이냐?'이다.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왜 여기서 그 말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서 그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은 언제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석의의 목표는 원저자가 의도하는 바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과제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운문과 단락을 잘 알아볼 수 있는 번역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용의 문제.
내용은 단어들의 의미와 문장의 문법적인 관계, 그리고 사본에 따라 진술하는 바가 다를 경우, 원본을 택하는 문제 등과 관련을 맺는다. 고후5:16에서 바울은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라는 말씀을 하였는데, 여기서 '육체대로'란 누구를 꾸미는 말인가? 그리스도인가? 그리스도를 아는 '우리'인가?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더 이상 그리스도를 '세상적인 안목으로' 알지 않는다는 말이다.
석의를 위한 참고서들.
두 번째 과제 : 해석학.
해석학이란 보통 석의를 포함해서 해석의 전 분야를 통틀어 지칭하는 것이지만, 고대의 본문에 대한 현대적 타당성을 찾는 것을 뜻하는 좁은 의미로도 사용된다.
우리가 성경을 접하게 되는 것은 결국 우리들이 처한 '지금 여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기를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이 우리의 경건한 묵상을 올바로 이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절한 '해석학'은 반드시 든든한 '석의'와 함께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 연구에서 '지금 여기'의 문제부터 출발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해석학이 성경 본문 자체의 본래의 의미에 의해서 철저하게 통제를 받는다는 데에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어디까지나 본문의 '명확한 의미'이다. 주관적인 해석이 아니라, 객관적인 해석의 원리에 따라 본문의 의미가 결정되어야 한다.
또 우리를 향한 성경 본문의 참된 의미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처음 말씀하셨을 때에 본래 의도하셨던 바의 의미와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