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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제8장 비유 - 비유의 요지를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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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규태 작성일200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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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비유 - 비유의 요지를 알고 있는가?

간략한 비유 해석사.
예수께서는 비유를 말씀하신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비유는 예수님의 측근들에게는 비밀을 담고 있는 것인 반면, 그렇지 못한 외방인들에게는 강퍅케 하는 것임을 암시하신 듯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깨닫기를 원하여서 비유를 내셨다.

비유를 이해하는 열쇠 가운데 하나는 비유를 처음 들은 원래 독자들을 밝히는 일이다.

비유의 특성.
그 종류의 다양함.
비유라고 말하는 것이 다 같은 종류가 아니다. 예컨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이는 참 비유라 할 수 있는데-와 누룩 비유-이는 직유이다-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참 비유는 시작과 마침이 있는 완전한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줄거리에 해당하는 것이 들어있다.
그러나 누룩 비유는 직유라고 하는 것이 더 낫다. 이러한 비유들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취한 예화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비유들이 모두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비유 모두에 해당되는 어떤 규칙을 내려서는 안 될 것이다.

비유의 역할은 무엇인가?
비유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실마리는 비유의 역할에서 발견된다. 비유 그 자체는 메시지이다. 비유를 말한 이유는 청중들에게 교훈을 주며, 그들을 사로잡기 위한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재고해 보도록 하기 위함이며, 또한 어떤 방도로든지 예수님과 그의 사역에 반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비유 석의.
비유가 언급하고 있는 것들의 요지를 찾아냄.
눅7:40-42의 비유를 예로 들어 설명하여보자.
(눅7:4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눅7:41)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눅7: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여기서는 예수께서 시몬이라는 한 바리새인에게 저녁 식사를 초대 받은 것이 이 비유의 배경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 초대는 유명한 랍비가 방문한 것과 같은 영예로운 초대로 간주되지는 않았다. 예수님께 흔히 누구에게 베풀 수 있는 호의도 베풀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깎아 내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성읍의 창녀가 간신히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서는 여자의 자존심도 버린 채 엎드려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던 것이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사항은 3가지이다.
돈을 빌려 준 자와 두 빚진 자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지칭하는지도 분명하다. 하나님은 돈을 빌려 주는 사람과 같다. 그 성읍의 창녀와 시몬은 각각 두 빚 진 자와 같다. 이 비유는 시몬으로부터 어떤 반응을 요청하는 심판의 말씀이다.
시몬은 이 비유의 요지를 거의 놓칠 수는 없을 것이다. 비유가 끝났을 때 그는 창피하여 얼굴이 벌개졌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유의 위력이다.

비유에 등장하는 것들은 단지 청중을 비유로 이끌기 위한 이야기의 부분들에 지나지 않으며, 청중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그것들이 무엇을 지칭하는지를 찾아야만 한다.
이 비유에서는 시몬과 그 친구들에게 내린 심판의 말과 창녀에게 내린 그녀를 용납함과 죄사함이 이야기의 요지이다.

청중이 누구인지를 밝힘.
청중이 복음서에 기록되었을 경우, 해석의 과제는 다음 세 가지 점들을 종합하는 일이 될 것이다.
1) 비유를 반복하여 읽는 일.
2 )예수께서 원래의 청중들이 간파하기를 기대하였던 내용을 찾아내는 일
3) 원래의 청중들이 그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하였어야 했는지, 또 그들이 무엇을 들었어야만 했는지를 결정하도록 노력하는 일 등이다.

선한 사마리아 비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율법 학자에게 베풀어진 것이다.
비유를 여러 차례 읽어 보더라도 그 율법 학자가 질문한 것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은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인상적인 방법으로서 비유는 그 율법사의 독선적인 자기 의를 폭로한다. 그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알고 있었고, 그는 그가 아주 경건하게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할 만한 용어로 '이웃'의 의미를 규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2개뿐이다. 그것은 위기에 처한 사람과 사마리아인이다.
1) 다른 편에서 그냥 지나간 두 사람은 제사장 부류로, 율법에 정통한 랍비들과 바리새인들과는 대척적인 종교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다.
2) 가난한 자에게 자선을 베푼 것은 바리새인들에게는 중대한 사건이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있다는 표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하신 비유의 요지는 두 번째 큰 계명인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율법사는 어떤 한계 내에서만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는 몹시 좁은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하신 일은 그의 선입견과 그의 마음의 증오를 폭로하셨다.
그럼으로써 그는 이 계명을 진정으로 순종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의 사랑의 결여는 사마리아인들을 증오하고, 또 제사장들을 경멸한다는 사실에 있다.

탕자 비유.
이 비유의 배경은 예수께서 악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을 용납하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수군거린 데 있다.
이 비유의 요지는,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들을 은혜롭게 사하실 뿐만 아니라, 큰 기쁨으로 그들을 용납하신다는 것이다.
형은 아버지가 잃은 아들에 대하여 쏟는 사랑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역사적 배경이 없는\" 비유들.
원래의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는 비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는 비유가 언급하고 있는 것과 원래의 청중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유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가 떠오를 때까지 비유를 재삼 읽는 것이다.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 언급하는 바는 단지 3가지이다. 집주인, 하루 종일 일한 품꾼들, 한 시간만 일한 품꾼들.
이 이야기를 듣고 가장 가슴이 뜨끔했던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당연히 하루 종일 일한 품꾼들이다.

이 비유의 요지는 탕자의 비유와 흡사하다. 하나님은 자애로운 분이며, 의인들은 하나님의 관대함을 시샘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여기 마태의 문맥에서는 제자도를 가르치는 문맥에서 나타난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들.
하나님 나라의 비유란 '하나님의 나라는 이와 같으니   '로 표현된 비유들을 말한다.
첫째, 이끄는 말, '하나님의 나라는 이와 같으니   '는 비유에 언급된 첫 번째 요소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도 상인도 밭에 감추인 보화도 아니라는 말이다.
문자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것에 비유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전체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특성에 관한 어떤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둘째. 이 비유들은 예수님의 초대와 제자됨의 요청에 반응을 촉구하는 메시지의 수단이었다. 씨뿌리는 자 비유를 예로 들어보자. 네 종류의 토양은 하나님 나라 선포에 대한 네 가지 각기 다른 반응과 같다. 그러나 이 비유의 핵심은 시간의 긴박성에 있다.
이 말씀이 너희 앞에 있다. 그러므로 듣고 주의하라. 열매 맺는 토양이 되라.
이 비유의 중요 사상은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하였고, 하나님의 때가 가까웠다. 그러므로 현재의 순간은 대단히 긴박한 순간이다.
예수님의 선포에 있어 이같은 긴박성은 이중적인 사상을 지니고 있다.
1) 심판이 임박하였고, 재앙과 파국이 문앞에 이르렀다.
2 그러나 기쁜 소식이 있다. 그것은 구원이 모두에게 골고루 주어진다는 것이다.

눅12장의 어리석은 부자 비유에서는 종말이 바로 문전에 다가왔는데, 자기의 소유나 자기 안보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라면, 대단히 어리석은 사람임을 지적한다. 예수님께서 지적하고자 하시는 바는 재물을 소유하려는 욕망은 현재 상황에서는 전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의한 청지기 비유(눅16장)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간의 긴박성으로 도전하시는 것이다. 청지기는 임박한 재난을 준비하기 위하여 행동했다. 자기의 처지에 대비하여 어떤 것을 행하였다. 너희들도 마찬가지이다. 긴급한 때이므로 행동을 취하라고 예수께서 말씀하고 계신다.

1. 행동, 즉 회개를 요청하는 긴급한 때는 또한 구원의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는 기쁜 소식이기도 한 것이다. 마13장에는 쌍둥이 비유들(밭에 감추인 보화와 극상품 진주 비유)은 발견의 기쁨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농부에게 엄습해 오고, 상인은 그것을 추구한다. 그들은 보화와 진주를 사기 위하여 기쁨으로 그들이 가진 것들을 청산한다.
하나님 나라는 보화도 진주도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 나라를 발견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해석학적 질문.
비유의 해석학적 과제는 특이한데, 그것은 곧 비유가 본래 말하여졌을 때에는 해석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비유는 청중들에게 즉각성을 지녔고, 많은 비유의 효과는 청중을 사로잡을 능력이 있었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비유가 우리에게는 기록된 형태로 전해졌고, 우리는 원래의 청중들이 가졌던 비유가 언급하는 바를 즉시로 이해치 못하기 때문에 비유는 정확히 해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작업을 해야 하는가?
1. 우리는 기본적으로 성경의 현 문맥에 위치한 비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태가 한 것처럼(예컨대, 마18:10-14; 20:1-16) 동일한 가르침을 우리의 상황 속으로 번안하는 일이다.
2. 예수님의 모든 비유는 어느 방도로든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수단이라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독자는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의미에 흠뻑 젖을 필요가 있다.